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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시걸, 홀로코스트를 통해 삶과 죽음의 관계를 마주하다

작품 & 작가 분석

by sukimin 2025. 1. 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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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이트 큐브 미술관 짙은 파란색 바닥 위 사람 모형의 하얀 석고 더미가 널브러져 있고 그들을 뒤로한 채, 날카로운 철조망을 움켜준 한 남자가 관람객을 마주하고 있다. 관람객은 철조망을 통해 이 모든 상황을 마주하는데, 이는 마치 강제 수용소를 연상시켜 그들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나타낸다. 널브러진 10개의 석고 더미는 머리를 맞댄 채 시계의 시침, 분침처럼 다리를 뻗고 있으며 십자가 모양으로 배열되었다. 그들은 모두 알몸으로 무참하게 겹겹이 쌓여 있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손에 사과를 들고 있거나 팔을 뻗은 채 고통스러운 몸짓을 나타내고 있다. 전경에 서 있는 남자는 시체들과 달리 옷을 입고 있는 유일한 생존자로 작품 구도의 긴장감을 더한다. 

 처음 <홀로코스트>를 마주하면 인물의 독특한 배열과 형태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작품 보는 것을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철조망이 놓인 전경의 수직과 수평의 관계와 연결해 생각하면 더욱 확장된 작품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잔가지들을 말끔하게 정리한 약 2m의 나무 기둥 2개가 수직으로 서 있고 이 나무 기둥을 잇는 가공된 나무토막은 수평으로 놓여 있다. 이러한 화면 안에 구성된 이들을 암시하기라도 하듯 살아남은 한 사람만이 수직으로 서 있고 죽은 사람들은 수평으로 누워있다. 수직은 아직 살아 있음, 수평은 죽어서 의미를 잃거나 변형되어버렸음을 조형적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삶은 영원할 수 없고 죽음의 경계 선상에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을 뿐이다. 최후에 살아남은 자는 체념한 듯 철조망에 오른손을 올려놓았지만, 철조망을 이루는 철사는 석고를 잘라내는 실톱을 연상시켜 최후에 살아남은 자 또한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내포하고 있다. 

 <홀로코스트>는 뉴욕 유대인 박물관에 설치된 이후 같은 맥락으로 샌프란시스코 링컨 공원에도 설치되었다. 이곳에선 실내에 작품이 놓인 뉴욕 유대인 박물관과 달리 야외에 설치되어 있으며 방문한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철조망 뒤로 가서 시체들과 함께 누워 작품을 경험하는 것을 권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도 그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여 있음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사진 출처

https://thejewishmuseum.org/collection/1698-the-holocaust

https://artandarchitecture-sf.com/sf-holocaust-memorial.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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