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박물관 (The British Museum) "문화는 권력이자 국력이다"

'The British Museum'을 대영박물관이라고도 많이 칭하지만, 대영박물관은 일본을 통해 들어온 번역어이고
'The British Museum'을 직역하면 영국 박물관이니, "영국 박물관"으로 부르는 게 맞는 표현이라고 한다.

오픈 시간에 맞춰서 입장해 문닫기 전에 나온, 아주 긴 관람을 한 영국 박물관 🏛️
이름은 '영국 박물관'이지만, 왜이렇게 다른 나라 문화 유적의 보물들이 많을까?
그건, 19세기 대영제국이 힘 없는 나라들의 유물들을 약탈했기 때문. 하지만, 영국박물관의 출발은 의사이자 박물학자였던 한스 슬론 경(Sir Hans Sloane)의 수집품 기증에서 시작되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한 슬론은 평생 수집한 7만 1000점을 1753년 조지 2세에게 넘겼고, 왕은 그 대가로 슬론의 상속인에게 2만 파운드를 주었다. (당시 수집품 가격에 비해 매우 낮은 가격) 그리고 영국 의회는 영국박물관법을 제정했다. 이후 조지 2세도 잉글랜드 왕들이 보유했던 도서관의 일부 책을 기증했고 1759년 1월 15일 영국박물관은 문을 열게 된다. 당시 유럽의 박물관들은 왕이나 성당의 소유가 대부분이었지만, 영국박물관은 국가가 설립하고 운영한다는 점에서 당시 상당수의 박물관과 구분되었다.

"배우고 싶어하고 호기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로 개방"해달라는 슬론 경의 요청에 따라 26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켜지고 있다.
현대 공산주의의 창시자 칼 마르크스가 영국 자본주의 발달사를 연구하여 『자본론』을 쓴 곳도 바로 이곳이라는 사실.

박물관 입구를 들어서면 "네 발이 앞으로 수천 년간 지식의 한가운데 있게 하라(and let thy feet millenniums hence be set in midst of knowledge)."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슬론 경의 수집품 기증에서 시작된 영국박물관의 출발은 소박했지만, 영국의 국력이 커지면서 박물관도 이에 비례해 커졌다. 19세기 영국이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세계 각지에서 가져온 수집품이 급증했기 때문. EX) 로제타스톤(1802), 타운리 컬렉션(1805),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 조각품들(=엘긴마블, 1816)

전시실 한가운데 거대하게 우뚝 솟아있는 모아이 석상.
돌하르방과 같은 현무암으로 만들어졌다.

로제타스톤은 기원전 196년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칙령을 상형문자로 기록한 것으로 1799년 이집트에서 전투 중이던 프랑스 병사가 발견했으나, 영국이 1801년 나일강 전투에서 이겨 프랑스로부터 빼앗었고 1802년부터 영국박물관에 전시되기 시작했다. 이집트는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유물인 로제타스톤 반환 요청을 끈질기게 요구하지만, 영국은 이를 거부하고 있는 중. 사유는 이집트가 소장품을 제대로 보존할 능력이 없다는 것. 이에 이집트는 카이로에 이집트 박물관(The Egyptian Museum)을 새로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소장 문화재를 영구히 반환하지 못한다는 자국 법을 내세워 유물 반환 요청을 거부 중..
'자본'을 쫓고 '민주'를 지키는 21세기의 현대라지만, '민주'가 지켜지지 않은 사례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아직도 돌려줄 생각을 안 한다는 것.. 우리나라의 직지심체요절도 마찬가지이지만, 수많은 가치를 창출하는 문화재를 지금의 영국은 돌려주기가 싫겠지? "원소유국이 유물을 제대로 보존할 능력이 없다", "이미 보관 중인 인류 유산을 타국에 넘겨주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 온갖 사유를 만들어 내며 반환 요청을 암묵적으로 거부하는 중이다.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막론하고 찬란하고 위대한 역사를 가지고 싶어한다.
"문화는 권력이자, 국력이다"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의 영국박물관.
Egypt 이집트 발굴펀드를 조성한 영국인들
이집트 전시관은 봐도봐도 끝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방대했는데, 영국박물관에는 7개의 이집트 상설전시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간이 부족하여 이집트 소장품 가운데 4%만이 방문객에게 공개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 10만 점이 넘는 이집트 소장품을 보유 중인데,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을 제외하면 최대 규모)




19세기 영국 귀족들은 이집트 발굴펀드를 조성하여 이집트 전역에서 발굴활동을 벌였는데, 크고 무거운 돌기둥들은 잘라서까지 배에 싣고왔다.. 이집트 석상 중, '쪼개져 있는 나머지 부분은 이집트에 있다'라는 글을 볼 수 있는데, 이 유물들이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에 놓여 이집트 공기와 경관 속에 살아 숨 쉬고 이집트의 맥락 안에서 유물을 관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파르테논 대리석 조각(Parthenon Marbles)
=엘긴 마블(Elgin Marbles)
파르테논 신전과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건물에 있던 조각을 영국 7대 엘긴 백작, 토머스 브루스(Thomas Bruce)가 통째로 떼어오면서, 엘긴 마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시 오스만제국의 대사로 근무 중이던 엘긴(본명: 토머스 브루스)은 고대 그리스 애호가였으며, 당국의 허가를 얻어 폐허에 남아있는 조각품을 해체하여 런던으로 가져왔다. 이는 파르테논 신전의 현존하던 조각의 절반이라고 한다.

엘긴이 파르테논 신전에서 가져온 조각품 뿐만 아니라, 그리스 조각품에 관심이 많던 무역상 Lord Buveen이 영국박물관에 파르테논 조각품을 전시하도록 건물을 지어주었다.



인류학자 마셜 살린스(Marshall Sahlins)는 시장 경제의 대안을 논하며 이렇게 주장한 바 있다. "풍요로 가는 길은 두 가지다.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더 많이 생산함으로써 풍요로워질 수 있고, 욕구를 줄여 덜 원함으로써 풍요로워질 수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풍요로 가는 세 번째 길도 있다. 바로 폭력을 써서 빼앗고 훔치는 것이다."
폭력을 써서 빼앗고 훔치는 것. The British Museum = The Brutish Museum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하다.
유물이 내뿜는 찰나의 숨결
국가의 역사적 상호관계와 문화적 얽힘은 뒤로한 채, 유물이 내뿜는 찰나의 숨결을 깊이 들이마셔 보자

정말 너~무 아름다웠던 유리공예품 ✨🫧 (영국에서 만든 건 하나도 없다 ㅎ)


디지털, 데이터, AI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이렇게 손으로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작품이 너무 귀하고 소중하다. 🛠️
이 작품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은 작품만 봐도 얼마나 행복했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보존과 큐레이션이라는 기술을 거쳐 ‘맥락' 안에 놓인 유물들


한국 전시실
The Korea Foundation Gallery
한국 전시실은 2000년부터 마련되었고 아시아부에서 관리 중이다. 7~8세기 통일신라시대 불상, 13세기 고려청자, 조선 후기 백자, 18세기 김홍도의 <풍속도첩> 등이 이곳에 진열되어 있다.


박물관이 과거에만 머무르기보다는 현재에 존재하며, 상황에 맞게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곳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국 박물관에서 찍은 사진이 너무 많아, 일부만 정리해서 업로드 하지만! 나중에 추가할 수도 있답니다. 🤓)
『참고자료』
- 통합유럽연구회, 『박물관 미술관에서 보는 유럽사』, 책과함께, 2018
- 댁 힌스, 『대약탈 박물관』, 책과함께,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