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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일상과 예술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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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kimin 2025. 1. 8.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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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적 회화가 거대한 이야기나 상징적 주제를 다뤄왔다면 동시대(同時代, 같은 시대) 회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일상성’이다. 우리 주변에 보이는 이미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재해석하거나 새로운 이야기를 부여하며 ‘지금’, ‘여기’를 강조하고 있다. 21세기 가장 인기 있는 화가이자 20세기 최고의 구상미술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데이비드 호크니 David Hockney(1937~)는 가볍고 개인적인 이야기, 일상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소재들을 찾아내어 그림으로 그린다. 20세기 독일의 미술가 요제프 보이스 Joseph Beuys(1921-1986)는 ‘모든 사람이 예술가다’라는 철학을 가지고 삶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삶이 되는 확장적 개념을 제시하였다. 청소도 예술 행위가 될 수 있다고 말한 요제프 보이스 의견에 따르면 예술과 일상을 구분 짓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든 일상 또한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현대인들의 가장 보편적인 예술 활동을 ‘사진 찍는 행위’로 보았다. 사진을 보면 찍은 사람의 시선을 읽을 수 있고 사진들의 집합체인 앨범을 보면 그 사람의 관심사를 알 수 있다. 하지만 19세기 과거의 사진과 21세기 사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과거에는 사진기를 보유한 사람만이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사진 기술을 보유한 사람의 특별한 능력, 비싼 필름 가격 때문에 일상의 소소한 것을 기록하기보다는 결혼식과 같은 거대한 서사나 이념과 같은 중요한 날을 기록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필수품인 휴대전화에는 고화질의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어 누구나 손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어딜 가든 항상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며 주머니, 가방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의 휴대전화를 꺼내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한두 번의 터치로 담아낼 수 있다. 전문가와 같은 사람에게 부탁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사진은 더욱 내적인 삶 속에 스며들어 거침없는 일상, 길거리에 활짝 핀 꽃, 반려동물, 점심에 친구들과 먹은 음식 등의 개인적인 소재, 평소 일상에서 보고 느끼는 것들을 무작위로 찍어내는데 이런 행위는 한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일 계속 반복된다.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다를 수 있고 일상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동기를 유발하기도 한다. 이런 이미지들은 휴대전화 앨범 한편에 남아 있거나 SNS에 업로드되는데 SNS에는 현재 행해지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이미지가 쏟아지고 있으며 입체적인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제각각 모인 이미지 집합소인 인스타그램은 그 자체로 온라인 박물관이 될 수 있을 정도이다.

 자신을 기록하는 또 하나의 일기장으로 사진이라는 매체는 어쩌면 글보다 오히려 과도하게 사용되고 있고 이런 넘치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현대인은 이미지에 무감각해져있을지도 모른다. 쉽게 찍힌 만큼 쉽게 다뤄지고 삭제되는 이미지, 스마트폰의 스크롤에 휘리릭 넘어가지 않도록 한눈에 띄는 이미지, 더 자극적이어야 주목받는 이미지는 사진기의 발명 이전엔 자신이 눈으로 본 것을 그리고 오랫동안 관찰하고 기록했던 시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과학, 기술 문명의 산물인 휴대전화가 기억을 대신 담아주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 시대의 미술, 예술이라는 것도 그러한 맥락으로 서사가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사회적인 맥락에 속박되기보다는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고 공유함으로써 자신의 취향과 특성을 표출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대변하는 것들의 연장선이 예술이 되는 것 같다.